젓가락은 제각기의 길이, 제각기의 표식, 제각기의 문양을 지녔다. 지금보다 아주 오래전 만들어진 젓가락이라면 그러하겠고, 요즘 만들어진 젓가락이라면 제각기의 모양, 제각기의 재질, 제각기의 빛깔 그리고 이름까지도 지녔을 테고. 나란히 나란히.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한 곳 옆에 다른 한 곳으로. 홀로도 온전할 수 있지만 아무도 그것이 그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몸을 뉘고, 무엇을 곁에 둘 것인가- 혹은 무엇의 곁에 드리워질 것인가. 아무튼 젓가락은 누울 수도 있고 설 수도 있다. 나무 혹은 금속, 아니라면 합성수지 재질의 단단하고 가느다란 막대기. 단수이기엔 완결의 강도가 과하고, 복수이기엔 조금 모자란다. 반찬을 집는 문제. 아주 가끔 찰나이긴 하나, 그 반찬 사이에서 머리카락을 골라내는 문제. 경계가 있어서, 윤곽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모든 것이 흘러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질료가 수은과 같은 것이라면 흘러내리면서도 윤곽을 지니겠으나. 그것은 무엇도 굳히지 못하고, 가까스로 지닌 경계는 참람하리만치 유약하다.
고대의 제례는 성과 속을 경유한다. 여기에서 짝을 짓거나 홀로 오롯하기는 그야말로 문제가 된다. 있음과 없음이 각각 다른 뜻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경우엔 어떨까? 요즘 세태답지 않은 흐드러진 차례상에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좌포우혜. 망고는 가운데, 몽블랑 케이크는 앞줄 두 번째, 로스트 비프는 왼쪽 끝, 타피오카 밀크티는 오른쪽 어드매. 먹고 먹이기는 하릴없이 신령한 일인데, 젓가락은 무엇도 잡아내지 못한 채 두들겨지거나 세워지거나 뉘어진다. 음복은 온전히 땅의 것이 된다. 젓가락은 아무것도 집어가지 않았는데, 음식은 벌써 남은 것이 된다. 상에서 물러난 접시가 산 사람들의 손 사이로 들어온다. 음복은 잔류하며, 잔여는 언제나 문제가 된다. 잔여는 반드시 밀려난 것, 혹은 밀려 들어온 것이다. 그 앞에서 허기가 지지 않을 도리는 도무지 없다. 잔여는 누출된 것, 드러난 것, 남겨진 것, 폭로된 것이다. 남은 것을 제 앞으로 당기는 손들이 있다. 입을 벌리는 동안 허기는 감춰지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는 허기진 채, 얼마든지 나체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손을 뻗는다. 손을 섞는다. 손들이 서로 섞인다. 게걸스러운 저작 활동의 부산물- 쩝쩝 짭짭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운다. 선조께서는 농부셨으며, 생전 평생 수많은 입을 살려 채우셨다. 입이 막혀 말을 잃은 후손들아.
시간이라면 모를까, 해가 뜨고 이우는 형세는 어느 곳에서든 공정하고, 저녁 일곱 시쯤, 하늘로부터 땅 깊숙이까지 푸른 어둠이 내려앉아 모든 것을 적신다. 음식들도 사람들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우리의 장막을 찢고, 부엌데기의 놀이가 시작될 때다. 이 집안에 터 잡은 모든 젓가락이 수직으로 도열한다. 젓가락은 짝을 짓기 시작한다. 작은 두 손이 우아한 춤을 춘다. 젓가락과 젓가락 사이로, 허공과 허공 사이로. 젓가락은 같은 길이, 표식, 문양, 모양, 재질, 빛깔, 이름을 지닌 짝을 갖지 못한다. 젓가락은 하나가 아닌 홀수로 짝지어지기도 한다, 잠깐 그건 짝이라 할 수 없다고?
그러면 하나를 빼자. 부엌데기는 빼낸 젓가락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다. 남은 둘은 길이도 굵기도 달라, 작은 손은 한쪽을 조금 내려 쥐고 다른 한쪽을 고쳐 잡는다. 밥솥 바닥에서 식은 밥을 긁어모은다. 밥을 퍼낸 자리에 붙은 것들이 젓가락 끝에서 한 입이 된다. 음식은 모두 사라졌으나, 밥이라고 부르기 모자란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므로. 머리에 꽂힌 하나는 이제 비녀라 부르면 될 것이다. 그렇게 셋은 무사히 둘이 되고, 둘은 한 벌이 되며, 하나는 처음부터 젓가락이 아니었던 것이 된다. 참으로 정갈한 수습이다. 다만 부엌데기가 고개 숙여 입을 벌리는 동안, 음식에 닿지 않는 하나가 머리카락을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하나가 붙들고 있는 동안, 밥을 집는 손은 입가의 머리카락을 걷어내지 않아도 된다. 이것 역시 먹이는 일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젓가락은 여전히 두 개인가. 대꾸할 입은 밥알 무더기로 충만해지며, 작은 손은 또 한 번 솥 바닥을 긁는다.
쇠젓가락을 꼬챙이로, 달군 인두로 만들어보고팠던 적 있나요? 그 예리한 끝이 눈동자를, 동공을 정확히 채우는 상상. 뇌간과 뇌수를 조우하는 상상. 만날 수 없는 것을 만나게 하고 싶다. 더는 팔복八福을 기릴 수 없는 세계로 가고 싶다, 하지만.
내일이면 누군가 짝을 잃은 젓가락 하나를 찾을 것이다. 그 전까지 여자아이는 잠과 함께 자라고, 비녀와 함께 한동안 새벽을 유영할 것이다.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