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아줘
문구점에서 몇천원 들여가며 산 편지지에 아끼는 펜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나간다. 마음을 담는다. 마음도, 마음을 담은 편지를 썼다는 사실도 혼자서 견디기 어려워 정말 친한 친구에게만 살짝 발설한다. 당연하게도, 믿었던 친구는 다른 친구에게 말을 옮긴다. 어느 날 탄로난다, 마음이. 탄로나면 어떻게 되느냐고? 놀림당한다. 그렇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원해서 간절해지는 것은 지당히 놀림당할, 부끄러울 일인 것이다! 비청소년의 세계로 나아가면 그 방식은 더욱 교묘해진다. 마음을 들키면 언제나 평가당한다. "그렇게까지 좋아할 만한 사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걱정섞인 첨언들부터 시작해, 남미새니 여미새니 하는 분류들, 누군가를 절실히 원하는 마음 때문에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여기저기에 휘둘러버리는 사람들이란 경멸받아 마땅하다는 목소리들. 만난지 일이주밖에 되지 않은 애인에게 애플워치를 사주는 건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째서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들까?
마음에 대해 당당해져야만 하는 것처럼도 말했지만 견디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마음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추해진다. 인정하자, 마음은 언제나 부끄럽다. 나의 마음도, 타인의 마음도. 아니, 정확하게 말하겠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그것도 절실히 원한다는 것은 정말로 부끄러울 일이다. 부끄럽기만 한 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취약해지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은, 아주 작은 크기이더라도, 마음의 영토 일부분은 너를 주인으로 두고 있다는 말일 테다. 연락을 하지 않는지가 아침에 양치할 때도, 친구와 웃으며 떠들다가도 떠오른다. 카카오톡을 확인한다.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억누르기 위해 알림을 꺼둔 채팅방. 내 생각 안 하나? 내가 신경쓰이지 않나? 내가 그러하듯이, 간절하지 않은 건가? 온 번뇌, 잡념, 뭐 하냐는 물음 하나만으로 희열을 느끼거나, 마음이 참담해지거나... 휘둘린다, 상대방은 무엇 하나 나에게 가한 것이 없는데 나는 그 사람의 손에 들려서는 아니 부착돼서는 그 사람이 팔을 움직이는 모양새대로 나풀거린다. 배란기의 성욕때문에 친하지도 않은 사람과 잠을 자고 난 뒤 피우는 담배. 니코틴의 맛보다도 진한 현타의 맛. 무언가 갈급한,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SNS에서 관심을 구걸했을 때. 그보다도 전애인에게 가서 구걸했을 때. 나는 3개월 전에도 전애인에게 연락했고, 8개월 전에도 전애인에게 연락했고,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야말로 내가 제대로 연애를 하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부터 쉬지 않고 연락해댔다. 물론, 전부 다 다른 사람들이다. 몇은 이제 내 연락에 답장도 하지 않는다. 나의 마음이면, 나의 마음대로 되어야만 할 것을, 언제나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비굴하게 만들고, 질질 짜며 구걸하게 만든다.
좋아하는 강아지의 뒤꽁무니를 쫓는 강아지. 구애를 위해 온 잡동사니로 몸을 치장하고, 둥지를 치장하고 선물을 가져다주는 새. 데이팅 어플에 올릴 사진을 고심하는 누군가. 선연락 문구를 몇 번이고 다듬고, 정말 보낼지 진짜 진짜 진짜로 보내버릴지 아니면 조금만 더 기다려볼지 챗지피티를 고문하는 나. 내가 객관적으로 매력이 없느냐고 인터넷에 하소연 글을 올리고, 외모 평가를 모르는 사람에게 맡겨버리는 수많은 남자들.... 비참하지, 비참하긴 한데, 열받는다. 그럴 일이 아니다. 그럴 사람도 아니다, 시발, 우리는 언제나 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굴게 만드는 것, 나 자신, 충동, 어떤 마음들, 성욕, 아니 성욕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연결되고 싶다는 이 마음! 내가 네게 중요했으면 한다. 너도 나를 원했으면 하고, 나를 바라보고 반응해주었으면 해! 어째서 그걸 원하지? 왜 홀로 설 수 없지, 오롯이 두 다리로 스스로를 지탱해가며 설 수 없는 것이지, 왜 자꾸만,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로, 이것과 저것에게로 향하고야 마는 것일까, 손을 잡아달라고 요청해버려서, 거절의 수모를 겪어버리고야 마는 것일까? 타인을 이해하려 들었던 것은, 나조차도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어떤 순간들, 속에서 넘실넘실 차오르며 나를 적셔오던,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회오리치며 흔들어대던 풍랑들 그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제 힘으로 제 발로 서지 못하는 인간이 서다 못해 앞으로 나아가기란 누군가가 손잡아주었기 때문이니까. 무게를 나누어 들어주고, 등을 밀어주었기 때문이니까. 2021년의 봄, 몇 시간이고 울면서 담배를 피우던 대낮, 담배를 빼앗아 버리고 안아주었던 누군가. 나를 침잠하게 만드는 음악의 아티스트를 스트리밍 앱에서 언팔로우하고, 차단하고, 다시는 이딴 거 듣지 말라고 해준 누군가. 사실 그것이 누구였는지도 이제는 희미하지만, 그것이 누구였는지가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손을 잡아주었다는 사실, 앞으로도 나는 잡아줄 누군가를 바랄 거라는 사실…
가끔은 돌아본다, 내가 보냈던 연락들, 내가 올렸던 트윗들, 과거의 일기, 챗지피티를 붙들고 했던 하소연들. 생경하다, 아니 놀란다, 왜 이렇게까지 군 것일지, 왜 이런 스스로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보다 깨끗해졌기 때문에, 보다 성숙해졌고, 자립했고, 욕망에 덜 휘둘리게 되었기 때문에 놀랄 수 있는 것일까? 언제나 안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돌아보고 기겁하는 순간마저도, 나는 향하고 있다. 누군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나의 속에는 언제나 똑같은 물음이 자리한다. 나의 손을 잡아줄 수 없겠냐는 물음이. 어쩌면 그 손은 끝내 오지 않을 것이고, 온다 해도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손잡아줘. 내가 너를 향해 내민 손이 허공에 닿아 있다는 사실을 잠깐 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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